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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금연 성공기
작성자 노원명/매일경제 작성일 2006-06-09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지난해 7월 24일 이후로 담배를 피지 않고 있다.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으로 보아 금연성공이라 말하기는 이른 단계다. 언제 내가 피웠나? 싶을 정도로 담배에 무심(無心),무념(無念)한 단계가 돼야 비로소 금연에 대해 말할 자격이 생간다고 한다. 아직 멀었다. 그래도 10개월이 어딘가. 14년의 흡연기간을 통 털어 종전 최고 금연기록은 고작 일주일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심지어 기사를 쓰다가도 금연일수를 헤아려 본다. 다섯 달을 넘기고서 부터는 이것도 만만찮은 일이 됐다. "어 벌써 이렇게 됐나. 노기자. 너 참 큰일했다." 그러나 금연이후의 이해득실을 곰곰 따져보면 금연이 별로 남는 장사인것 같지는 않다. 금연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자기 확신, 정서적 충일감을 제외하면 몸이 거뜬해진다거나 하는 가시적 변화는 솔직히 드물다. 금연이후의 긍정적 변화를 열거하면 이 정도다. 첫째, 용돈에서 담배값 지출이 없어졌다. 이건 가장 눈에 띄는 변화이면서 금연을 지속하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월 10만원에 가까웠던 담배값이 그대로 굳었을 터인데도 용돈이 풍족해졌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연을 기념하는 뜻으로 10만원 짜리 펀드를 들었는데 두 달 불입하고는 끝이었다. 용돈의 쪼들림 강도는 담배를 필때나 끊은 지금이나 똑같다. 둘째, 시간이 많아졌다. 이전엔 담배 피느라 일 할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기사 한건 쓰고 담배 한 대, 책 몇페이지 읽고 담배 한 대...한개비당 5분. 하루 20개비를 피운다고 치면 100분을 연기로 날려 보냈다는 얘기다. 그것도 한참 집중해서 일해야 할 시간대에. 그렇다면 금연으로 새로 확보됐을 100분은 어디에 쓰이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생산적 용처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흡연시간이 줄어든 만큼 차 마시는 시간이 늘어났고 낮잠도 더 잔다. 이래서야 무슨 금연의 의의가 있을까 싶다. 셋째, 체중이 늘었다. 본디 여윈 체질이라 살한번 쪄보는게 소년시절부터의 소망이었다. 남자는 결혼을 하면 얼마간 살이 불게 마련인데 지난해 결혼도 하고 담배도 끊어 체중증가 요건을 쌍으로 갖춘 셈이었다. 그 결과 단 1년만에 10~12kg이 불어버렸다.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한 것이어서 막상 살이 찌니 날씬했던(당시에는 허약하다고 생각했을) 옛 시절이 그리워졌다. 무엇보다 늘어나는 뱃살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처럼 금연의 긍정적 효과가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반면 부정적 효과는 오직 부정적일 뿐이어서 심히 곤혹스럽다. 가장 심각한 것은 기사를 쓰거나 책을 읽거나 할 때 준비 동작이 길어졌다는 사실이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투구 인터벌이 길어진 것이다. 예전같으면 담배 한 대 피면 바로 시작할 일을 요즘은 녹차 한잔 마시고, 생각 좀 가다듬고, 화장실 다녀오고, 주식시세 한번 살피고 나서야 겨우 자판에 손이 올라간다. 또 한가지, 긴밀한 인간관계 유지의 중요한 수단이 없어져 버렸다. 운동이나 잡기에 무능하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오직 술, 담배밖에 없는 녀석이 그 중 하나를 끊어 버렸으니 사람들을 무슨수로 사귈 것인가.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회사 동료들이 한담 나누는 자리에 나를 빼놓고 가는 빈도가 높아졌다. "한대 피고 하지"하던 사람들이 요즘은 "한대 피고 올게" 한다. 담배 안하는 사람은 자리에 앉아 전화나 받으라는 얘기다. 회사 내 뒷공론은 담배 피는 자리에서 90%가 오가는데 중요한 취재원을 잃어버린 꼴이다. 이쯤 말하고 보니 무슨 흡연옹호론자의 당토않은 궤변 비슷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단적으로 말하건대 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티끌만큼도 제 아무리 기사가 쓰기 어려워져도, 집단의 왕따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니코틴의 힘을 빌리려 구걸하지 않을 것이다. 끊어보니 알겠다. 담배를 끊는 일은 건강에 해로운 습관 하나를 없애는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좀 거창하게 말하면 방종했던 젊은 날과의 고별의식 같은 것이다. 그것은 신이 구획 지은 우리 인생에서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인생을 변혁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 손을 흔드는 일이다. 금연은 인간의지에 대한 신념의 회복이며 초라한 과거와의 영원한 단절 선언이다. 금연 10개월 짜리의 발언 치고는 허세가 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만한 동기부여 없이 성공하는 금연도 드물다. 모든 금연은 '자기 환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담배를 끊을 결심을 하게 된 데는 책 한권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책 한권이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는 말이 있지만 내 경우에 책이 금연을 가능케 했다. 그 책을 발견한 것은 화장실 선반에서였는데 제한시간 10분안에 책 한권을 독파하려면 목차에서 가장 관심 가는 대목을 골라 읽는 수밖에 없었다. '인생 컨설팅'을 주제로 총 17장으로 구성된 이 책중에서 내가 펼친 대목은 제15장 '습관을 지배하는 방법'. 금연과 절주에 성공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었다. 정확히 기억할 수 있는 문구는 이것 한가지다. "인간이란 정신을 가진 육체가 아니고 육체를 가진 정신이다." 그 문장을 일고 난 직후의 감정 상태는 부끄러움이었다. 문득 내 지난 과거 전체가 육체에 의해 지배당한 정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가 지배하는 정신이냐, 정신이 지배하는 육체냐, 그 양자택일의 물음 앞에 나의 위치는 너무나 명백하게 전자쪽이었다. 앞서 무수한 금연시도가 무위에 그쳤던 이유도 이 한마디로 설명됐다. "자신이 육체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육체가 나를 지배하는 것을 용서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어디 담배뿐일까. 육체의 욕망치고 내 정신과 겨뤄 이기지 못한 욕망은 어느 것도 없었다. 지난 인생이 환멸스러워졌다. 책에 따르면 담배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이것 한가지다. "담배를 없어서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참으로 미운 존재라고 생각하라. 이따위 것에 지배당하고 있다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라." 그래도 흔들릴 것 같으면 마지막으로 호소할 곳은 자존심이다. '자존심의 상실에 대해 생각하는 것.'"습관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은 자신을 잃게 하는 일이다. 담배 따위의 미물 하나 지배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인생이라는 거대한 덩어리를 지배할 수 있겠는가." 그날 이후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 견딜만했다. 좀 많이 생각나는 날에는 '넌 언제까지 육체와 타협이나 하면서 살래'하고 야유를 보냈다. 담배를 다시 피게 되는 꿈(일주일에 한번은 꾼다)을 꾸는 날엔 가위에 눌리곤 한다. 분한 마음에 엉엉 울다가 깨어나면 그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그 중에는 윈스턴 처칠 경처럼 담배를 노예처럼 부리며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게 담배는 기호품일 뿐이다. 즐길 수만 있다면 독도 약이 되는 법이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 담배는 질곡이 된다. 담배를 저주하면서 피우는 사람들, 끊는다 끊는다 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에게 담배는 독이다. 몸보다는 정신에 안 좋다. 늘 담배에 정신이 패배당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필자가 썼던 방법을 써보길 권한다. 정신을 가진 육체냐 육체를 가진 정신이냐, 그 선택이 있을 뿐이다. [보건복지포럼 제116호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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