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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향에 취하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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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min | 작성일 | 2019-11-23 | ||
조회수 | 3325 | 추천수 | 7 | ||
주차 후 인도에 올라 걸음을 옮기는데 훅~ 코에 스미는 친숙하고도 깊은 냄새.
순간, 황당한 몸의 반응에 갈피를 잊어 어지럽다. 아니, 6천일을 넘은 내가 이 냄새를 아직 잊지 못하다니. 그러고는 앞선 사내를 노려보는데 어럽쇼 그의 손에 담배가 없네. 나는 당황한다, 다시 눈을 돌려 냄새의 원인을 찾아본다.
발밑엔 축축한 갈색 느티나무의 낙엽이 길게 늘어있다. 낙엽이 발효하면서 보내는 오래고도 정겨운 내음. 삶의 원초적 냄새를 담배냄새로 착각한 것은 나의 뇌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며칠 전 이곳을 방문해 ‘억지로 공감을 끄집어 낸’ 영향 때문이리라.
푸른 신호등이지만 가로에 가만히 서서 낙엽이 주는 마지막 선물을 크게 들이킨다. 누룩의 취기와 볏단의 노곤함이 섞인 향은 아득한 유년으로 인도하여 뇌를 평안케 한다.
약간 비린 벼꽃 향에 취해 논두렁에 오래 머물던 기억. 소나기 후두둑 쏟아질 적, 훅훅 날리던 고향의 흙내음. 그리곤 늦가을이면 오래토록 낙엽 향에 물들어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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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운 향을 팔아 담배의 악취를 사서 삼십 년을 보냈으니 내 삶에서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고 불행했던 시절이었어. 오감에서 코의 감각을 버렸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이야.
음식을 먹거나 술잔을 들 때, 제일 먼저 눈으로 먹고 다음에 코로 마시잖아. 눈은 가식이 많지만 코는 직설적으로 받아들이지, 간접화법이 없어. 그녀의 스웨터에서 물살로 번지던 새물내. 생머리에서 나비로 날리던 비누 향. 입술에서 빛나던 석류꽃 향. 손목팔찌의 토끼풀 향. 모두가 찌르지 않고 가만 스미는 향이지.
나는 즐거워, 이런 행복의 향기를 매일 마시고 사니까. 담배에 빼앗긴 청년과 장년의 삼십 년을 지나 십여 년 전에 내 오감의 광복을 맞았어.
나는 그래서 이 노년이 좋아, 행복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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