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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혹은 낭만에 대하여 상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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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혹은 낭만에 대하여
작성자 min 작성일 2014-10-10
조회수 6455 추천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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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열심히 배웠지.

뻐끔거리다가, 살짝 들이켜 콜록거리다가

허파로 집어넣는데 일 년의 고된 수련기간이 필요했지.


폐로 넣고 허파꽈리까지 팽팽히 채우는 데 삼년이 걸리더군.

그제야 제법 ‘흡연의 무법자’처럼 카리스마가 풍겨 나와

폭풍에서 성냥을 북~ 그어도 성냥불은 꺼지지 않고

입에서 담배를 떼지 않고 끝까지 피우는 내공도 익혔고

거친 남성상을 과시하고파 은빛의 ‘지포’라이터도 지녔고

때론 증기기관차의 굴뚝처럼 콧구멍으로 연기를 내뿜곤 했어.


이런 짓은 심약함의 반작용으로 나타난 과장과 허풍일 뿐이지만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짓이 있다는 건 어깨를 으쓱거릴만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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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침은 언제나 화를 부르는 법.

스물하나의 나이에 기침이 끊이지를 않고

잠을 자다가 흉통이 심해서 잠을 깨곤 했는데

숨을 들이쉬면 갈비뼈가 부러지는 것 같이 아팠지.


아픈 몸을 이끌고 떠난 여름의 해변에서

밤새 소주잔으로 허공에 노를 젓다

백사장에서 널브러져 자고 일어난,

현기증이 나도록 빛나던 여름의 아침.

목에 가래가 끓어 후미진 백사장에 가래를 뱉었더니

하얀 모래밭에 선홍색으로 번지는 각혈(?血),

곱더군, 아침의 햇살은 눈부시고........


붉은 피, 하얀 모래밭, 백설공주의 어머님이 생각나더군.

나는 이 붉음과 하양으로 무엇을 잉태하려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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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엑스레이를 찍고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담배를 물고 있었지.

결과를 설명하더군, 결핵, 늑막염, 폣병이었던 게야.

스물일곱에 요절한 시인 이상이 생각나더군, 그는 날개를 달았을까?


나았다가 재발했다가 4년 이상을 투병생활을 하며

절망에 익숙해져 계속 담배를 피웠는데 어찌어찌 낫더군.

허지만 내 청춘은 벌레가 갉아먹어 잎맥만 앙상한 나뭇잎이었지.


병든 청춘이라고 사랑을 하지 않았겠어?

폣병은 여인과 담배가 가장 해롭다지만 붉은 피를 어쩌겠어.

만난 여인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고 떠났어, 아니 내가 떠나보낸 게지.

당신의 가슴은 너무 넓어 어디에 머물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라며 떠나더군.

건강한 육신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 듯, 병든 몸엔 병든 정신이 깃드는 것임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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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신(神)에게 미친 광신도로 삼십여 년을 보냈어.

쉰 살이 될 즈음엔 하루 세 갑을 피워 흡연의 정상을 밟았지만

정상등반의 후유증은 심각하여 테니스 한 게임 하기 힘들 정도로 헉헉 대었지.


죽음의 단어가 어른거렸지만 정상에 오른 자가 무슨 미련이 있겠어.

피우다 죽으면 그만이잖아, 더구나 운이 좋게도

햇살 좋은 날, 바람 피한 담벼락에 기대앉아

담배 입에 물고 곱게 쓰러져 떠나면

담배순교자가 될 터이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나도 인간이라고 책임감이 솟는 거 있지.

아직 애들이 장성하지 않았으니 그들을 버리고 떠남은 죄악이잖아.

이상도 하지, 담배의 독극물로 사망 직전에 오니 평생 멋대로 산 내게

가족, 사랑, 가족애 - 이런 아름다운 단어들이 마구 뇌에 솟구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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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리고 사랑, 그것의 실천, 쉽지, 아주 쉽지.

간단하잖아, 담배를 입에 물지 않으면 되는 것.

그 행위를 아주 거창하게 금연이라고 부르잖아.


허지만 그 간단한 짓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어.

하루마다 절망하기를 마흔 번, 마흔한 번째의 날, 하루를 버텼지.

그 하루가 불씨가 되었어, 새 생명의 불씨이니 얼마나 소중했겠어.


그래, 금연은 백일, 한 달, 일 년, 십 년을 견디는 게 아니었어.

단 하루만 참고 견디면 이루어지는 것 이었어.

그 ‘하루의 기적’은 남이나 신의 도움이 아닌,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었음을 느끼면 돼.

어제 했던 ‘그 하루’를 오늘 한 번 더 하면 돼.

그런 날의 구슬들이 꿰어져 염주가 되는 것이거든.


그런데 하루마다 한 알의 구슬을 만들기 위해선 꼭 필요한 의식(儀式)이 있어.

가슴의 염원을 입으로 올려 이빨로 꼭꼭 씹는 이 ‘되새김의 의식’은

염불 혹은 주문이라 부를 것이니, 항상 외야 하지만 특히

분노가 일거나 술을 마실 땐 꼭 필요한 것이야.


그 주문은 사람마다 다 다른데 이를 초심(初心) 혹은 발심(發心) 이라고 부르더군.

나의 주문은 자식, 가족, 그리고 나를 기억해주는 모든 이들에 대한 사랑이었어.

사랑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담배 대신 이들에 대한 염원을 입에 물고 되뇌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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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는 귀신에 친숙한 나이가 되어

바람과 꽃과 나무와 벗해 노니는 내게

십 년도 넘은, 오래되어 빛바랜 얘기야.


내면의 신비한 변화, 외면의 다른 생명과의 교감.

삶이 풍부해지고 아름다워졌어.

모두가 금연의 덕이야.


또한 금연은 흡연으로 비롯되었으니

비록 담배는 극악무도한 죄인이지만

나를 키워주는 학습도구이자 수행의 방편이기도 하니

역설적으로, 담배는,, 저잣거리의 군상들을 깨침으로 이끄는,,, 은혜로운 물건 인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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