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잔 하고 왔습니다.
선준님, 외로움 축하합니다.
저는 외로움이 뭔지 잘 모릅니다.
아니, 외롭고 싶어 미치겠습니다.
해서, 홀로 마시던 술집을 버리고
내게 맞는, 허름하고 을씨년스럽고
조용하고 화려하지 않고 다소 음침하여
내 칙칙한 영혼을 꺼내어도 생경하지 않고
음악이라면 흘러간 옛 노래가 잘 어울릴
그런 술집을 찾아 직장 근처를 헤매다가.
끝내 발견을 못하고 순대집에 들어갔습니다.
아홉시가 조금 안 된 시간,
넓은 식당에 주인아줌마 혼자
티브이 드라마를 보다가 맞더군요.
순대국밥 하나, 소주 하나.
이젠 사색도 아무 필요 없고
인간사 생각도 모두 끊어지고
삶은 그저 살아있는 것일 뿐
의미를 부여할 힘도 없어,
그저 마시고 먹었습니다.
계산, 칠천원, 국밥 오천, 소주 이천 합이 칠천.
만원으로 배 터지도록 먹고 술까지 마신 이 행복.
거기다가 잔금 삼천원이 손에 가득한 이 축복이여.
처음으로 개나 돼지의 행복을 느껴보는 요즈음.
동물이 의식 없다해도 행복하지는 않을 거라는 느낌.
따라서 인간이 해탈을 했을지라도 희열은 없을 거라는 생각.
뇌 주름의 도랑 따라 언제나 번뇌가 흘렀건만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모두를 놔버려도
흐르는 건 없고 적막만 가득한 이 회색 대뇌피질을
싯다르타는 적멸이라 했지만, 나는 참혹이라 부르노니,
삶인들 죽음인들 행이나 불행이나 무슨 차별이 있으랴.
모두를 부정하고 모두를 긍정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고
모두에 절망하고 모두에 환호하기까지 오랜 방황이 필요했지.
내게 더 물질이 필요하랴, 평생 마실 돈이 있는데.
사랑이 필요하랴, 가슴은 너덜거려
받으면 주루룩 흘러나가고
주려해도 비었는데.
그러나, 나 말고
이 환절기의 밤에 외론 사람 있음에
안도를 하는 이 비겁한 자는 님 남겨두고
서울로 가야합니다, 외로운 자도 잠은 자야하기에.
내일 아침엔 숲의 꽃 만나야합니다.
보아주는 이 없이 사위면 얼마나 슬플까요.
선준님은 나를 달래주고 나는 꽃을 달랠 테고...
봄은 깊어가고
꽃은 보아주는 이 없어도 피고
선준님은 알아주는 이 없어도 향내를 품고....
(사실 다 알아주지만, 멋있게 글 쓰려니 저는 거짓말을 하고,ㅋㅋㅋ)
저 떠납니다. 영등포 집으로.
여기서 자도 되는데 왜 가는지 모릅니다.
아, 안가면 밤새 글을 써야 될지도 모르겠군요,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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