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로 바로가기

체험 및 비법전수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링크복사


체험 및 비법전수 (금연비법 및 감명 깊은 글은 추천을 통해 추천글 보기로 이동됩니다.)금연아이콘 소개

금연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습니다.

* 저속한 표현, 타인의 명예훼손, 상업성, 불 건전한 내용의 게시글을 게시할 경우
임의로 삭제될 수 있으며 금연길라잡이 서비스 이용에 불이익이 갈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커뮤니티 글을 제외한 기타 문의글은 온라인상담실 또는 홈페이지 문의 게시판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 로그인 시 게시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저곳에 가고파라 상세 페이지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추천수, 내용 정보를 제공합니다.

저곳에 가고파라
작성자 min 작성일 2009-02-12
조회수 2100 추천수 0
청춘을 벌레가 갉아 먹고 장년은 술과 벗하느라

아직 여행을 가보지(거의) 못한 저는

운주사가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백제 땅이라면 남녘의 호남이지 싶습니다.


운주사(雲住寺), 

雲, 비(雨)를 만드는 꿈틀거리는(云) 구름이

住, 등잔불 심지(主) 돋운 옆에 있는 사람(人), 곧 주인으로 머무는 곳에

寺, 마디(寸)지어 가는(之) 그러한 형상의 터라는 말씀.

구름이 머무는 높고도 깊은 청정한 도량이라 느끼면 되겠지요.

(* 司는 寺의 오타입니다.)


매니아의 비명 :

<이곳을 처음 보았을 때는 다소 생경했고, 충격을 넘어 혼란이었다.

‘도대체 이게 부처란 말이야.....세상에....’하는 비명이 나왔었으니까>

매니아님의 글과 그림보고 지르는 나의 비명 :

이곳을 처음 사진과 곁들인 설명으로 보니,

‘진정한 부처로다, 세상에 이리 질박한 부처의 모습이 있다니...’


제가 느끼는 한

저 부처들은 장인의 솜씨가 아닙니다.

매니아나 저 같은 소박한 민중들의 솜씨입니다.

무언가 절박한 사연이 숨어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예를 들어 백일 만에 천 개의 부처상을 만들어야 한다거나,

한 사람이 하나씩, 모두 천의 부처를 만들어 세워야 한다거나 - 하는.

(이유는 우강님의 말씀처럼 의문이지만 “묻거나 따지지 말고”)


고려 후기라면 몽고군의 말발굽이 짓밟을 때이니

팔만대장경을 만들듯 그렇게 천불(千佛)을 만들어야 했거나,

그 전이라면 왕건에 의한 중앙집권이 아직 완전치 못할 때

견제세력인 호족 중의 하나가 주민을 모아 염원을 이루려 했는지도 모르지요.
(그것도 아주 다급하고 절박하게, 사람의 힘으로는 항거할 수 없었기에)


이런 것은 역사학자의 몫이며

오히려 모르는 게 신비를 더하기에

사학자들이 미스터리로 남겨두길 전 원합니다.

(달의 신비를 벗겨낸 오만한 인간을 저주하며)


제가 놀라고 또 이리 글을 쓰는 건 그림과 글에서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신선하고 아름다운 충격 : 이곳이 진정 부처의 세계를 꿈꾸는 곳이로구나.


열반하기 전 석가는 자신의 표시나 형상을 나타내지 말라하였습니다.

석가의 형상을 어떤 표지나 형상으로 나타내면 틀림없이 경배를 할 것이고

그것은 자신의 가르침인 적멸(寂滅)과는 멀어지기 때문이었지요.


부처 열반 후, 이 가르침은 잘 지켜졌지만

세월 흐르자 부처를 그리워하며 표지를 만들기 시작했지요.

무덤의 형상, 그것이 탑이 되고, 가르침을 도형으로 그려내기도 하다

마침내는 형상을 그리고 새기고 만들어 오늘까지 이르렀지요.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강조를 했건만, 인간은 말을 참 안 듣지요)ㅠㅠ


절의 단청, 금부처, 휘황한 조명 : 다 헛것이지요.

불교는 부처라는 너를 통해 나를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갈고 닦아 너의 경지에 올라 스스로를 구원하는

즉, 타력(他力)이 아닌 자력(自力)의 수준 높은 종교이지요.

(다만 노력하기 싫어 ‘빌기’만 하니 ‘빌어’먹거나

‘타력’의 힘을 노리니 ‘타락’이 되고 말았지만요.)


저기 운주사에 널부러진 저 부처의 모습이야말로

진정으로 인간세상을 같이 느끼고 아파하는

실천적 자비의 모습은 아닐까요.

저들은 버림받은 나를 위해 오셨으니

내가 모시고 경배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본성에 가까운 질박한 내 원형의 모습은 아닐 런지.


예술이나 글이나 질박에서 교묘(巧妙)를 탐하다가

다시 자연을 닮은 질박으로 돌아와야 완성되듯,

사람의 삶이야말로 더욱 그러하여야할 것이라고

저 부처가 말을 하네요, 아주 쉬운 서민의 언어로.


저런 곳이 있다면 나도 여행을 떠나야합니다.

느낌을 주는 글, 감사합니다.


이틀 남았습니다,

저 부처보다 높음을 향해

치열하게 수행을 해야 하는 날이.

저 앞에 계신 ‘나의 부처’께 힘을 달라고 부탁할 테니

매니아님은 그저 타오르는 불만 멀리하시면 됩니다.(거 참 쉽네^^)

전체댓글수 0

페이지만족도 조사

현재 페이지에 대하여 얼마나 만족하십니까?

확인
금연상담 카카오
상단으로 이동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