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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및 비법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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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 있음에서 됨으로
작성자 김무승 작성일 2008-11-26
조회수 2143 추천수 4

오늘은 보건소 금연클리닉 방문 3주차다. 사실 이제 금연클리닉에 가봐야 특별히 더 들을 이야기는 없다. 그렇지만 나는 오지말라고 할 때까지는 나갈 생각이다. 한 주 한 주 무사히 금연해가는 것을 주기적으로 음미할 계기가 되기도 하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나름의 의식이 된다. 또 가면 친숙한 얼굴의 금연상담사 아주머니가 칭찬해주시는 것도 좋고, 왠지 숙제를 다해간 학생이 선생님에게 자랑하고픈 마음이 드는 것도 가슴뿌듯하다. 돌아올 때는 별것아닐 수도 있지만 다시마와 비타민 사탕을 받아오는 것이 상받고 오는 기분이 들게한다.

 

금연클리닉이 이제는 새로운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의학적 도움을 줄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의미있는 것은 금연을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으로만이 아니라 사회적 공간에서 다른 사람의 격려와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공식적인 기회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적지않은 보람과 동기부여가 된다. 내가 힘들지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매주 관심갖고 인정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과의 실제적인 대면은 스스로 책임감을 가진 주인이 되는 경험일 수 있다. 그럴때 자신의 고통과 노력이 고독한 내면의 경험이나 혼자만의 몸부림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분명하게 가치있는 일임을 확신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된다.

 

사람에게 타인의 관심과 인정, 말은 참으로 큰 의미가 있다. 혼자하는 생각이 아무리 논리적이고 타당한 것같아도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지 않을 때는 쉽게 흔들리고, 거꾸로 아무리 어처구니없는 생각도 지지하고 공유하는 사람이 많으면 현실감을 갖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는 사람을 흔히 의지강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개인의 자질로 평가하지만 그런 사람은 지지해주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않을 뿐이지 어쩌면 마음 속에는 자기수련을 통해서든 교육을 통해서든 공감하고 지지해줄 것이라고 믿는 인물이 존재하는지 모른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이 전기를 읽고, 성공했거나 인간적으로 훌륭한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처럼 사람은 나누고 통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할 때 혼자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하고 긍정적이 된다. 그래서 사랑이 궁극적인 가치가 되기도 하는 것같다. 비록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하고 공감하려는 관심이면 누군가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른다. 그런 이야기는 진부한 것이면서도 새삼 다시 깨닫는 바가 있다. 금길에 오는 마음은 금연클리닉에 다니는 마음과 다르지 않고 사람과의 진실한 관계에서도 본질은 같다.

 

오늘 금연클리닉에 갔더니 마실가듯 오신 아저씨가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금연한지 1년쯤 되신 모양이다. 지나는 길에 지압기구를 얻으러 들르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시는 이야기가 요즘들어 담배연기냄새가 구수한 것같아서 걱정이란다. 내 경우는 이제 금연한지 두 달이 넘어가는데 담배냄새가 퀘퀘하고 좀 역겹다. 그런데 1년이 넘은 아저씨가 담배냄새를 구수하다고 말하니 그것도 시간이 가면 달라지나보다 생각했다. 그 때 금연상담사분이 담배는 평생 놓아주지 않는다고, 계속 노력하셔야한다고 말했다. 사실 모르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도 지금은 금단증상에서 힘겹게 벗어나고 있는 중이라 담배를 떠올리기도 싫지만 몸이 안정되고 편안해져서 이제 금연을 자부할만하다고 생각할 쯤이면 그 때 비로소 담배가 유혹이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금단증상이 힘들었던 만큼 그 기억을 간직하려고 노력한다.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6개월이든 1년이든 10년이든 금연은 담배라는 하나의 물건과의 관계가 아니라 삶 자체의 변화여야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됐다. 처음에는 금연기간이 몇 년 단위만 되도 그만하면 금연한거지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금연에는 "그만하면"이라는게 없는 셈이다. 아저씨는 열심히 하라며 등을 두드려주고 웃으며 떠났다.

 

금연이 얼만큼의 고생스런 과정 끝에 도달하는 완성의 "상태"가 아니라 평생동안 끊임없이 노력해야하는 미완의 "과정"이라는 사실은 금연을 무척 부담스럽고 불가능하기까지 한 것으로 보이게한다. 결코 완성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가망없는 일이라는 건데 그렇게 무모한 일을 할 수 있는가?

 

금연은 처음에는 금단증상을 전력을 다해 돌파하는 단거리 뛰기같다가 나중에는 안정된 페이스가 중요한 마라톤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마라톤에는 피니시 라인이 있지만 금연은 숨쉬는 동안 계속 뛰어야하는 마라톤이다. 이런 기분은 자칫 너무 부담이 되서 금연의 과정을 좀 더 긍정적이고 즐겁고 자부심을 느낄만한 것이기보다 불가능한 과제에 도전하는 것같은 막막하고 무모한 것으로 느끼게 만들 수 있다. 나도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면서 이런 기분을 느꼈다.

 

사람은 미래를 향해 낙관적인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을때 가장 강하고 건강하다. 그런 때는 시련이 가로막고 고통을 피할 수 없어도 고난은 더 큰 긍정과 완성의 일부로써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래서 사람에게 희망은 언제나 절실한 것이고 절망은 그대로 지옥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을 갖고서도 지옥에 들어가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금연이 매번 다시 시작해야하는 시지프스의 고난처럼 가망없는 일처럼 보여도 긍정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오히려 얼마든지 다시 시작해주마라는 시지프스의 담대한 태도가 답이 아닐까, 나는 이런 쪽으로 생각을 돌리고 싶었다.

 

 완성할 수 없는, 매번 다시 시작해야하는 과정을 긍정하기. 금연을 담배로부터 도망치는 것, 내 인생의 과오를 지우는 것, 손상된 것을 복구하는 것, 더 이상 손해보지 않기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네거티브하다. 이것은 소극적이고 뺄셈을 하는 것이다. 피하고, 있으면 안되는 것을 빼서 가장 바람직하게는 원상복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담배라는 지독하게 강력한 적을 상대로 평생을 네거티브한 방식으로 상대하는 것은 적의 막강함에 비할때 알맞은 것이 아니다. 더 공세적일 필요가 있다. 빼지 말고 더하자. 피하는 것으로 보지 말고 맞이하자.

 

어차피 인생에는 담배말고도 싸우고 견디고 극복해야할 것이 수없이 많다. 담배는 의학적으로 건강에 해로운 것이 분명해서 두드러져 보이지만 삶을 위태롭게 하는데는 일격에 끝을 볼만큼 담배보다 더 치명적인 것도 있다. 다시말해 산다는 것은 어차피 새로운 과제에 끊임없이 직면하는 일이다. 풀고, 또 푸는 일이다. 작은 일에는 끝이 있고 완성이 있다. 그러나 작은 일 다음에는 또 인생이 이어진다. 그렇기에 삶의 큰 의미는 작은 일들의 연속인 과정 전체의 모습에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삶이 가치를 갖는 것은 작은 일 자체보다는 그 일과 일 사이를 채우는 면면한 시도와 노력때문인지 모른다.

 

때로 사람들은 인생이 덧없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금연도 끝내 알아볼 수 있는 완성물로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의 덧없음은 작은 일에만 주목하는 시야의 협소함에서 오는 것일 수 있다.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과 사건 사이를 이어가는 시도와 노력의 면면함을 본다면 절로 삶의 뜻깊음을 느낄지 모른다. 금연 역시 사건으로보다 면면함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매일 매일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켜나가고, 하루 하루 자신의 노력에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를 도야하고 키우는 기회이고 과정으로써 금연은 뺄셈이 아니라 덧셈이 더 나아가 곱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담배를 배운 것을 후회한다. 이왕이면 처음부터 담배를 배우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후회는 필요하지만 짧아야한다. 이제 나는 금연하고 있다는 것을 나의 덕으로 보고싶다. 적어도 이렇게 자부하는 것은 괜찮을 것이다. "나는 금연할 만큼 강한 사람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를 죽일 수 없는 것은 나를 강하게 할 뿐이다" 금연을 실천하는 한 "나는 강하다"것이 진실을 담은 말이다. 금연은 결코, 마지막까지 쉽지 않다. 그러나 가능한 일일 것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이다. 어쩌면 삶의 마지막에 자부할 수 있는 일의 한 가지일지도 모른다.

 

용기있고 아름다운 말이 있어 마무리를 대신한다.

 

"용기는 가장 훌륭한 살해자다. 공격하는 용기 그것은 죽음까지도 살해한다. 왜냐하면 용기는 '그게 삶이던가, 그럼 좋다. 다시 한 번!' 이렇게 외치기 때문이다."(니체)

 

"손가락을 베이면 그 상처의 통증으로 하여 다친 손가락이 각성되고 보호된다는 그 아픔의 참뜻을 모르지 않으면서, 성급한 충동보다는, 한 번의 용맹보다는, 결과로서 수용되는 지혜보다는 면면한 기도가, 매일매일의 약속이, 과정에 널린 우직한 아픔이 우리의 깊은 내면을, 우리의 높은 정신을 이룩하는 것임을.."(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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