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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을 사는 기분 상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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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을 사는 기분
작성자 뫼찌 작성일 2014-08-31
조회수 7418 추천수 10


힘든 싸움 하고 계신, 이 게시판에 계신 모든 분들은 제목에 공감하시겠죠?  매일 짧다고만 생각했던 하루가 담배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길 수가 있다니...:(  어떤 순간엔 아주 1시간이 10시간 같기도 하구요.

어쨌든 오늘, 아니 어제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어요.  이 게시판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지만 제 또래의 친구들과는 이런 얘기를 나누기가 어려워서  하루만도 몇 번이나 게시판을 새로고침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새벽에 제 얘기를 들어주실 분이 몇 분이나 계실지 모르겠지만,  몇 분 안 계실 거라는 그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서... 금연 9일차, 그냥 제 일기 같은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몇 시간 전이었던 어제도 썼지만 저는 24살 여자이고, 주민등록증에 잉크가 아직 마르기도 전이었던  스무살 8월 여름. 에누리 없이 지금으로부터 딱 4년 전에 처음으로 담배에 손을 댔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담배는 커녕 수능 백일주도 안 마셔본 말 그대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청소년이었어요ㅎㅎ  나름 난 성인이 되고 나서 손을 댔다는, 그 전까지는 나쁜 짓 한 적 없다는 이상한 자부심도 있답니다;ㅅ;

그런 제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하나같이 묻는 게 도대체 어디서 담배를 배웠냐는 거였어요  제 또래들이 담배를 배우는 루트라는 건 보통 친구따라 뭣 모르고 폼으로 따라 피우는 게 많으니까요.  그런데 저한테는 웃기게도 아무도 담배를 가르쳐 준 사람이 없어요. 피워보라고 권한 사람? 없었어요.  그냥 스무 살 8월 어느날 여름에, 갑자기 번개 맞은 듯이,  어? 나도 이제 편의점에서 술도 사고 담배도 살 수 있는거 아냐? 라는 생각을 했어요.  ㅋㅋㅋㅋㅋ바보 같은 게.. 그 한순간의 생각 때문에 그 이후로 얼마나 오랫동안 고생하게 될지도 모르고 말이죠. 
 
저는요. 담배를 사면 불도 있어야 되는데, 편의점에서 라이터도 같이 파는지 아닌지조차 모르는 그런 아이였어요.  성인이니까, 죄짓는 거 아닌데도, 처음 담배를 사 보러 편의점에 들어가는 그 날이 얼마나 떨렸는지...  어떻게 담배를 사가지구 나와서는, 그걸 또 어디서 피워야 하는지도 몰라서 동네 구석진 놀이터를 한참 찾아 들어가서   누가 나 잡으러 오는 거 아닌지 한참을 눈치보면서 한 개피를 아주 오랫동안 처음으로 피워봤어요.  처음 담배를 피우면 목이 엄청 아프다던데, 기침이 죽을 듯이 난다던데, 머리가 핑핑 돈다던데.  아뇨? 저는 너무너무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기분도 좋고, 신기하기만 했어요. 

그렇게 미약하고 어처구니 없었던 시작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는데, 그 이후로 중간 과정은 기억에 없네요.  그냥 그렇게 시작해서 어느날 정신차려 보니 하루에 한 갑도 우습게 피우는 새파랗게 어린 꼴초가 되어있었어요.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담배를 피우고 싶었던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을 해소할 탈출구가 필요 했던 건데 제가 찾은 방법은 세상에 무수한 탈출구 중에서도 가장 비참하고, 어리석고, 어두컴컴한 그런 방법이었네요 이 곳에 지금 모든 이야기를 다 쓰기는 어렵지만, 제가 가진 문제는 담배 하나가 아니에요.  고등학생이라는 굴레를 벗어난 순간부터, 부모님 그늘을 벗어나 대학에 와서 혼자 살게 되면서부터,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정말 최악 중의 최악의 방법만 골라서 쓰게 된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 이미 식이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아서 그걸 고치느라 많은 시간을 버렸는데... 아직도 완전히 낫지 않았어 요. 지금도 저는 이 병과 함께 살고 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혼자서 술 마시는 버릇까지 생겨서, 매일 밤마다 소주 두 병은 아주 거뜬히 마셨다고 하면 믿어주실까요?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먹고 토하고... 그게 그냥 제 일상이었어요. 글로 써보니 정말 끔찍하네요ㅋㅋㅋ

그렇지만 학교 다니고 밖에서 사람들 만나는 제 모습을 보면 아무도 그런 제 모습을 상상도 못할 만큼 전 멀쩡하게 잘  살아왔어요.  혼자 있을 때면 부모님도, 친구들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모습으로, 괴물로 변해서 몇 년을 살았다는 걸... 아무도 몰라요. 당연히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밝힐 수 없는 모습이니까요.

그러다 우연히 엄마가 제가 담배 피우는 걸 알게 되시고 나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표정으로 했던 말씀이 아직까지도 기억나요.  네가 성인이 되면, 자유를 가지면 하고 싶었던 일이 고작 이딴 거냐고. 너에게 정말 실망이라고.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저도 당연히 제 빛나는 이십대가 그런 모습으로 병들어 갈지는 정말 몰랐어요.  그러고 싶지 않았구요.  하지만 부모님 앞에서 아이고 어머니, 제가 너무 속상하고 우울하고 가슴이 아파서 술도 마시고 담배도 좀 피웠습니 다, 거 죄짓는 것도 아니고 기호식품인데 좀 이해하세요. 저도 어른이거든요.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ㅎㅎ  그게 참 답답했어요. 마음으로는 항상 죄책감을 느끼면서, 머리로는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 억울해하는  모순된 내 모습 자체가.

결국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말 그대로 문제 투성이, 기계로 치면 당장 리콜해야 되는 쓰레기같은 인간이었습니 다. 표현이 심한가요? 하지만 정말 과장 없이 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다 문제였거든요. 섭식장애 때문에 체 중은 늘대로 늘어났고, 거기다가 한 끝발만 넘어가면 알콜중독자 수준으로 술을 마시고, 담배는 끊질 못하고...  다만 제가 '쓰레기같은 인간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바닥을 치면 올라오게 된다고 하잖아요ㅎ.ㅎ  지금 현재 섭식장애와 알콜 문제는 거의 완치되다시피 한 상태에요. 많은 노력을 했고, 살도 10kg정도 뺐답니다.  아직도 더 빼야 하지만, 이제 더이상 비만은 아니래요. 평균 체중 중에서 아주 통통한 평균 체중이ㅎㅎ 되었습니다.  술은 더 이상 맥주 가볍게 마시는 정도 이상으로는 마시지 않아요.  

음식과 술을 뱃속으로 쏟아 붓는 일은 하고 있으면서도 결코 행복한 일이 아니었거든요. 단 한순간도 음식을 밀어넣고  술을 퍼붓는 게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어요. 괴롭고 죽을 것 같은데도 그 순간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 았던 일들이.... 끊으려고 마음 먹으니 신기하게도 너무 쉽게 끊어졌어요. 신기할 정도로.  더이상 감정적 허기 때문에 음식을 먹거나, 외롭다고 술을 마시지 않았고, 대신 운동을 하고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했어 요. 행동을 바꾸니까 병들어 있던 정신도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정신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제 행동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도저히 이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고,  언제까지나 불행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바꿀 수 있는 행동을 바꿔나가야 하는  거고 마음이, 정신이 달라지는 건 그 다음이더라구요. 내 행동이 변하지 않는데, 매일 살던 모습대로 사는데 정신이 바 뀔 수는 없는 거였어요. 우울해 죽을 것 같아도 일단 일어나서 운동을 했어요. 지금도 아주 오랜 시간 데리고 살았던 우 울함이나 병적인 감정들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지만, 예전의 저에 비교하면 곰이 인간 된 수준인거죠...ㅎㅎ

그런 저에게 딱 하나 마지막으로 풀지 못한 숙제, 과제가 담배고 금연... 정신도 고치면서, 공부도 하면서, 살도 빼면서, 담배까지 끊는 건 진짜.... 힘들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ㅠㅠ..  결국 우선은 살을 빼고, 술을 끊고, 섭식장애를 고치는 걸 먼저 하기로 했던 거에요.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건 진짜 도저히 불가능했거든요.  담배 끊고 다이어트 성공한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란 말.... 다들 아시죠 ;ㅅ; ㅎㅎ 근데 두 가지도 아니고 세가지를 한꺼번에 하려니. 어휴.  나머지 두 가지가 어느정도 안정궤도에 들어섰다고 느껴서 이제는 담배도 끊자는 결심이 섰고,  9일 전부터 그렇게 저는 초보 금연자가 되게 된 거랍니다.

이제 이것만 고치면, 저는 제가 고통받아왔던 모든 종류의 '병적인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데... 어 렵네요. 너무너무.

어떻게 요약한다고 요약해서 짧게 써보려 했던 글인데, 이건 도대체 어느 분이 읽어주실까 싶을 정도로 구구절절 너무  긴 글이 되어 버렸네요.

담배를 끊는 다는 건 그냥 몸에 나쁜 어떤 물질을 끊는 게 아니라,   삶의 문제를 해결해오던 잘못된 방식을  끊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저한테 있어서는요.  컨닝해서 맞추고, 찍어서 맞추던 문제들을 이제는 공부 열심히 해서 올바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제  간절한 바램이고 소원입니다. 그 편이 훨씬 더 폼나잖아요. 담배도, 술도, 음식도, 모두 지독하게 치사하고 졸렬한 컨닝방법이었어요. 그  방법들은 순간은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본질적으로는 아무것도 도와준 게 없어요.  정말로 정직하게 정답까지 갈 수 있는 공식을 알고서 답을 맞춘 게 아니니까요.  답은 맞아도, 점수는 높아도, 결국 아는 건 아무것도 없는 컨닝쟁이 같은 거였어요...

저는 이제 저한테 당당하고 싶어요. 정말로. 다짐해 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시고 기억해주실 한 분이라도 계시다면 정말 감사할 거에요.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있는 글이라서 아침이 되고 정신이 난 후에 글을 지워버리더라도 너무 서운해 마세요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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