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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을 만난 아침 상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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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을 만난 아침
작성자 min 작성일 2013-10-14
조회수 5400 추천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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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요일 새벽, 인천대공원.

모처럼 십리 정도를 뛰고 산을 천천히 걸었다.

얼마던가, 나무와 꽃과 새를 멀리하고 건물에 박혀 산 지.


느티 잎은 노릇노릇 익어가고

벚 잎은 불긋불긋 타들어가고

밤송이는 절로 떨어져 번다.


조잘거리는 박새의 노래 소리에

어치가 커억컥 마른기침을 하면

딱따구리는 참나무로 목탁을 친다.


산을 내려와 꽃밭에 가니

여름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맺혔는데

드문드문, 늦사랑으로 피운 꽃의 이삭을 주워 망막에 넣는다.


은행나무 아래의 벤치에 투명한 좁쌀처럼 널린 이슬을 털고 앉아

자판기커피를 천천히 베어 물면 저릿한 향기가 입에 가득하다가

넘쳐 올라 대뇌의 도랑을 흐르고, 넘쳐 내려 명치에 빗물로 지면

하나의 인간이 향기에 스며들어 아늑하고도 고운 자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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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해보면 담배는 나의 절대신(神)이었다.

눈을 뜨면 입맞춤으로 향불을 피워 올리고

식사 후에는 언제나 들숨으로 불을 토하고

잠자리에서도 머리맡에 자리끼처럼 모셨다.


담배신의 사랑은 위대하여

한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더니

마침내 연기로 화하여 영원한 사랑,

하늘나라로 빨리 오라고 재촉까지 하는데

나는 인간세상을 버리는 대신 신을 버리고 말았다.


배교(背敎)의 벌은 신내림을 거부하는 자의 고통처럼 잔인하고도 오래지만

온몸을 사르는 저항으로 이겨낸 자의 몸은 새 그릇이 되니

거기에 채울 내용물을 가려 담지 않겠는가.


그 내용물은 처음에는 술이었다가 운동이었다가

거문고며 대금이며 크로키라는 취미였다가

꽃이고 나무이고 바람인 자연이었다는데,


요즘 다시 운동에 푹 빠져 꽃과 소원했다는데

이 가을, 다시 들꽃과의 사랑의 불을 지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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