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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져 가는 가족들의 관심 상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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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져 가는 가족들의 관심
작성자 고흥준 작성일 2015-10-28
조회수 5750 추천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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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의 글에서 덧글로 300일을 축하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곳엔 워낙 대선배님들이 많아서 축하받는 것이 쑥스럽습니다만, “앞으로도 잘하는지 두고 보겠어!”라는 격려의 채찍으로 여기고 금연 앞에서 언제나 겸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1월 8일(목)

 

처음 금연을 이어가던 사나흘 동안은 온 가족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여러분, 우리 남편이 드디어 금연을 시작했어요.”

“만세! 우리 아빠 가 담배를 끊으셨어요.”

 

금박 입힌 플래카드를 동네 입구에 걸어 놓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할 만큼 호들갑스럽기까지 했다. 이틀째부터는 평소에 애걸복걸해도 해 주지 않던 뽀뽀를 아이들이 해 주기 시작했다. 심지어 큰아이는 고등학생이다.

 

아내 각하는 “당신, 전생에 정말 나라를 구했었나 봐. 여고생 딸이 아빠 담배 안 피운다고 뽀뽀해 주는 집이 어디 있겠어? 더구나 나 같은 천사랑 결혼했잖아.”라며 놀린다. 뒤에 덧붙인 말은 잘 모르겠지만 앞의 말에는 동의한다. 아내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사춘기 딸의 뽀뽀를 받을 수 있는 아빠는 대한민국에 그리 많지 않다. 흐뭇하다. 전생에 나라까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산적 떼로부터 마을 정도는 지켜 낸 것 같다.

 

금연을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는 것은 물론, 패악까지 부린다고 해서 내심 걱정이 많았다. 나 또한 슈퍼 골초 니코틴 중독 환자였던 터라, 금연한답시고 가족들에게 짜증이나 부리게 되지는 않을까 여간 걱정이 아니었는데, 워낙 천성이 착한(?) 덕분인지 딱히 짜증을 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너무 평온하게담배를 끊으면 내가 얼마나 힘들게 참고있는지 모를 테니까 연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이고, 힘들어 죽겠네에~ 그냥 담배 피우다 죽어 버릴래에~.” 서커스 곰처럼 뒹굴뒹굴 구르면서 짜증난 척을 하면 식구들이 엄살 다 들어주고 왕처럼 대접해 주는 것도 신나는 일이었다. 그동안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면서 느꼈던-머슴도 아니고 사위도 아닌 소설 <봄봄>의 주인공처럼-머슴도 아니고 남편도 아닌 불분명의 인격체로 살아왔던 세월을 금연으로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 맛에 담배 끊는 거지!”

 

그런데 고작 일주일 정도 안 피웠다고 처음과 달리 식구들의 관심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제는 모두들 나의 금연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렇게 나의 금연을 인정하는 거야? 20여 년 쌓아 온 니코틴의 세계를 너무 우습게 아는 거 아냐? 하지만 쌍수 들고 환영할 만큼 신선하고 충만했던 가족들의 응원은, 바닥에 드러누워 담배소생술을 원하는 표정을 짓고 있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냉담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ㅁ

응? 이러면 안 되는데, 나의 금연에 대해 칭찬해 주고, 예뻐해 주고, 대견하게 생각해 주고, 엉덩이 토닥토닥으로 마무리까지 해 줘야 하는데…. 왜 나에 대해, 이 힘든 금연에 대해 무관심해질 수가 있는 거야? 그러고도 너희들이 가족이라고 할 수 있어?


나는 낙담했다. 어떻게 엄살을 피워야 다시 가족들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진지하게….

 

ㆍ 밥상을 엎어 볼까? (무슨 70년대 드라마 찍냐?)

ㆍ 가출을 해 볼까? (오히려 밥값 준다고 좋아할지도…)

ㆍ 뽀뽀 안 해준다고 위협해 볼까? (…이건 내가 더 손해 -_-;)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느 하나 협박의 건수가 되지 못했다. 그렇다. 이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엄살을 피울 수 없게 되었다. 엄살 노하우가 이미 다 들통 난 데다가, 새로운 전략을 세울 수 있는 두뇌 따위는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여자들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결혼 전에는 화장실 앞에서 가방 들고 여친님 나오시기만 기다리고, 결혼 후에는 마눌님 백화점 행차 때 인간 쇼핑 카트가 되어야 한다.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여자들도 그 순진한 양의 탈 좀 그만 벗었으면 좋겠다. 연애할 때는 얌전한 척 고상하게 양털 스웨터를 아양아양 짜다가, 결혼하는 순간 갑자기 돌변하여, “미안해. 그동안 감추고 있었지만, 나 원래 조폭 호랑이였어.” 등짝에 용 문신 새긴 가죽을 드러내면 어쩌자는 건가? 용 문신을 한 호랑이라니…. “그래요, 당신이 이겼어….” 이런 대사라도 원하는 거야?차라리 처음부터 채찍을 휘두르란 말이야. 아리따운미소로 나를 홀리고서는 이제와 이빨을 드러내면 어쩌라는 거야! 아, 천사 같던 소녀는 어디로 가고, 무서운 마누라쟁이만 남았단 말인가….

 

스물네 살, 멋모르고 시작한 담배가 실은 ‘용 문신을 한 호랑이’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20여 년 동안 줄기차게 피워 왔다. 그때는 담배에 대해 사회가 관대했던 시절이라고, 설마 이렇게 중독이 될 줄은 몰랐다고 변명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 나는 철부지였고, 어느 순간부터 니코틴에 중독된 환자가 됐다. 그동안은 환자가 아니라고, 나는 언제든 끊을 수 있는데 단지 끊고 있지 않는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왔다.

 

이제는 인정한다.

나는 니코틴 중증 환자였고, 여전히 환자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금연을 결심했다는 것이고,

그 결심을 하루하루 채워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스물 몇이었던 그 시절, 나는 왜 담배를 피웠을까? 그 꽃다운 청춘의 몸에 왜 이토록 끔찍한 독극물을 아무렇지 않게 주입했을까? 찬란했던 젊음을 스스로 질투했던 것일까? 나도 모른다. 고민과 자책으로 스스로를 천만 번 괴롭힌다한들 한 번 피운 담배의 해독이 나를 피해가지는 않는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원하지는 않았으나, 중독자가 되었음을….

 

나는 이제 겨우 8일 차를 맞은 금연 시도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생각이 달라졌다. 흡연을 하지 않으면서 변화하기 시작한 몸을 사춘기 소년처럼 깨닫고 있다. 이것은 질곡의 고통을 겪은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이다. 만약 내가 니코틴 중독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이와 같은 금연의 기쁨을 알 수 있었을까? 분명 몰랐을 것이다. 이런 자책이 설령 흡연의 늪에 빠졌던 자의 뒤늦은 회개일지언정, 나는 하루하루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이것은… 흡연했던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소중한 선물이다.

 

나는 10대 소년처럼 모든 것이 새롭고 다시 기쁘다. 일기장에 낯선 말들을 적으며 가슴 두근거렸던 사춘기 시절처럼, 2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호흡의 기쁨 속에서 잃어 버렸던 순간들을 몰래 더듬어 본다. 내 것이었으나, 내 것이 아니었던 세월들에게 핀잔의 기쁨을 준다. 다시 맞은 사춘기의 폐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역시나 신선하며,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가 꽃이다.

 

이 낯선 경험은 금연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했다.

 

지금까지는 억지로 담배를 참는 거라 생각했다. “담배는 끊는 게 아니야, 평생 참는 거지….” 이런 말에 속아 왔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스스로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라 정의하기로 한다. 단지 참기만 하는 것은 고통뿐인 수동이며 괴로움이지만, 스스로 피우지 않는 것은 능동이며 기쁨임을 성령 충만한 개척 교회 목사처럼 깨닫는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담배의 노예에서 벗어나기로 한다.

나 스스로 새로운 종교의 신이 되어 금연을 이어가기로 한다.

 

* 아이쿠, 지금 읽어 보니 너무 의식 과잉인 듯하네요. ^^ 쓸 당시에는 의지로 똘똘 뭉쳐 있던 때라, 또 자칫하면 언제 다시 담배 귀신에게 잡혀갈지 모르는 상태라 저런 거창한 구호를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듯싶습니다. 구호를 의지 앞에 방패막이로 내세운 것일 테지요. 그러니 마지막 부분이 너무 과하다 싶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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